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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한국사/고구려

고구려 왕 순서, 이제 안 헷갈려! 역대왕 계보 깔끔 정리!

by 레미 언니 202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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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 순서, 역대왕 계보 총정리!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에 위용을 떨쳤던 고대 국가이자,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위대한 역사입니다. 흔히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등 몇몇 이름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구려 705년의 역사는 결코 한두 왕의 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요.

 

창업의 기틀을 다진 시조 동명성왕부터, 국가의 기반을 닦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 왕들, 그리고 위기와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나라를 지킨 수많은 왕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고구려는 강성한 제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각 시대의 왕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구려의 번영과 존속을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고구려 왕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이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역사의 흐름을 생생하게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시조 주몽부터 마지막 보장왕에 이르기까지 28분 모든 역대 왕의 순서와 그들의 주요 업적정리는 단순히 이름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각 왕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그들의 리더십이 고구려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제 고구려 왕들의 위대한 계보 속으로 함께 떠나보실까요?

 

고구려 왕 순서, 역대왕 계보 총정리!
고구려 왕 순서, 역대왕 계보 총정리!


역대왕 계보와 주요 업적

  1. 동명성왕(東明聖王) [주몽(朱蒙)] (재위 19년, 기원전 37년 ~ 기원전 19년): 고구려의 시조이자 건국왕입니다. 부여에서 남하하여 졸본 지방에 고구려를 세웠으며, 초기에 주변 세력인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 등을 병합하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2. 유리명왕(瑠璃明王) (재위 37년, 기원전 19년 ~ 서기 18년): 동명성왕의 아들로, 재위 37년간 고구려를 정비하였습니다. 특히 도읍을 졸본에서 전략적으로 더 유리한 국내성으로 옮겨 수도를 안정화하였고, 5부족 연맹 체제를 정비하며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3. 대무신왕(大武神王) (재위 27년, 18년 ~ 44년): 유리명왕의 아들로,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고구려의 영역을 확장한 왕입니다. 북으로는 동부여를 정복하고 서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등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 확장을 주도하였습니다.
  4. 민중왕(閔中王) (재위 5년, 44년 ~ 48년): 대무신왕의 아우로, 재위 5년간 백성들의 안정을 꾀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내부적인 기반을 다지는 데 힘쓰며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였습니다.
  5. 모본왕(慕本王) (재위 6년, 48년 ~ 53년): 대무신왕의 아들로, 다소 포악한 성정으로 인해 민심을 잃었습니다. 재위 기간 중 국경 지역에서 한나라와 충돌이 있었으며, 결국 신하에게 시해되었습니다.
  6. 태조왕(太祖왕) (재위 94년, 53년 ~ 146년): '국조왕'으로 불리며, 무려 94년간 재위하며 고구려의 기틀을 굳건히 다진 왕입니다. 한나라 군현을 공격하고 요동으로 진출하며 북옥저와 동옥저를 정복하는 등, 고구려의 영토 확장 정책을 본격화하였습니다. 계루부 출신으로 왕위 계승을 확립하기도 하였습니다.
  7. 차대왕(次大王) (재위 20년, 146년 ~ 165년): 태조왕의 아우로, 태조왕의 아들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입니다. 재위 기간 동안 공포정치를 펼치고 잔인한 성정으로 민심을 잃었으며, 결국 신하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8. 신대왕(新大王) (재위 15년, 165년 ~ 179년): 차대왕의 아우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왕위에 올라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힘썼습니다. 내치에 힘쓰며 태평성대를 이루어 민생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았습니다.
  9. 고국천왕(故國川王) (재위 19년, 179년 ~ 197년): 고구려의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한 중요한 왕입니다. 부족적 성격이 강했던 왕위 계승 방식을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확립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을파소를 등용하여 빈민을 구제하는 진대법을 시행하는 등 개혁적인 정치를 펼쳤습니다.
  10. 산상왕(山上王) (재위 31년, 197년 ~ 227년): 고국천왕의 아우로, 왕위 계승 과정에서 혼란이 있었으나 이를 수습하고 즉위하였습니다. 환도성으로 도읍을 잠시 옮기기도 하였으며, 내부적인 안정을 꾀하고 고구려의 발전을 도모하였습니다.
  11. 동천왕(東川王) (재위 22년, 227년 ~ 248년): 산상왕의 아들로, 삼국지 시대 위(魏)나라와의 큰 전투를 치렀던 왕입니다.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으로 국내성이 함락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백성들과 함께 저항하며 고구려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2. 중천왕(中川王) (재위 23년, 248년 ~ 270년): 동천왕의 아들로, 재위 기간 동안 왕권 강화를 통해 내부 안정을 꾀했습니다. 또한, 위나라와의 국경 분쟁에 대비하여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힘썼습니다.
  13. 서천왕(西천왕) (재위 23년, 270년 ~ 292년): 중천왕의 아들로, 북방 지역의 정복 활동을 이어간 왕입니다. 숙신족을 정벌하고 요동 지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북방 개척에 주력하여 고구려의 국경을 안정화하였습니다.
  14. 봉상왕(烽上王) (재위 9년, 292년 ~ 300년): 서천왕의 아들로, 사치와 낭비가 심하고 포악한 성정으로 민심을 잃었던 왕입니다. 숙신족과의 충돌이 있었으나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고, 결국 국상 창조리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15. 미천왕(美川王) (재위 32년, 300년 ~ 331년): 고구려의 오랜 숙원이었던 낙랑군 축출에 성공한 왕입니다. 313년 낙랑군을 완전히 축출하고, 대방군까지 몰아내며 대동강 유역 전체를 고구려의 영역으로 확보하였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한반도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6. 고국원왕(故國原王) (재위 41년, 331년 ~ 371년): 미천왕의 아들로, 고구려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를 맞이한 왕입니다. 북으로는 전연의 침략을 받아 미천왕의 시신을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남으로는 백제 근초고왕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371년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17. 소수림왕(小獸林王) (재위 14년, 371년 ~ 384년): 고국원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를 재정비하고 중흥의 기틀을 다진 중요한 왕입니다. 372년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여 사상 통합을 이루었고, 같은 해에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또한,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통치 체제를 확립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18. 고국양왕(故國壤王) (재위 9년, 384년 ~ 391년): 소수림왕의 아우로, 재위 기간 동안 백제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요동 지역에서 후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고구려의 국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9. 광개토왕(廣開土王) (재위 22년, 391년 ~ 412년):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정복왕입니다.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선포하였습니다. 북으로는 거란과 숙신, 동부여를 정벌하며 만주와 요동 지역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였습니다. 남으로는 백제를 공격하여 크게 반도 땅을 침략하였고,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는 등 고구려의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였습니다.
  20. 장수왕(長壽王) (재위 79년, 412년 ~ 491년): 광개토왕의 아들로, 고구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하며 전성기를 완성한 왕입니다. 427년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 본격적인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475년에는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참수하는 등, 한강 전역을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시켰습니다. 중국 남북조 및 유목민족과의 다면적인 외교를 통해 고구려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21. 문자명왕(文咨明王) (재위 28년, 491년 ~ 519년): 장수왕의 손자로, 고구려 역사상 최대 영토를 확보한 시기의 왕입니다. 북쪽에 위치한 부여를 완전히 복속시키며 고구려의 지배 영역을 최대로 확장하였습니다. 이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끊임없는 정복 활동이 결실을 맺은 결과입니다.
  22. 안장왕(安藏王) (재위 13년, 519년 ~ 531년): 문자명왕의 아들로, 재위 기간 동안 중국 남조와 활발히 교류하며 안정적인 대외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왕권을 안정시키며 국가를 이끌었습니다.
  23. 안원왕(安原王) (재위 15년, 531년 ~ 545년): 안장왕의 아우로, 이 시기부터 고구려는 점차 내부적인 권력 다툼과 귀족 세력의 대립으로 인한 국력 소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국력 약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24. 양원왕(陽原王) (재위 15년, 545년 ~ 559년): 안원왕의 아들로, 재위 기간 동안 신라와 백제의 연합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한강 유역을 상실하는 등, 고구려가 점차 국력을 잃어가는 시기였습니다.
  25. 평원왕(平原王) (재위 32년, 559년 ~ 590년): 양원왕의 아들로, 중국의 수나라가 통일될 기미를 보이자 이에 대비하며 국방력을 강화한 왕입니다. 평양의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겨 방어에 힘썼고, 외세와의 전쟁을 피하며 실리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26. 영양왕(嬰陽王) (재위 29년, 590년 ~ 618년): 수나라와의 대규모 전쟁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왕입니다. 23년 재위 중인 612년,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100만 대군을 대파하며 고구려의 국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승으로 기록됩니다.
  27. 영류왕(榮留王) (재위 25년, 618년 ~ 642년): 평원왕의 아우로, 수나라가 멸망한 후 새로이 부상한 당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으며 전쟁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대내외적인 혼란과 함께 강력한 군사 정책을 주장한 연개소문과의 대립 끝에, 연개소문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여 천리장성 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28. 보장왕(寶藏王) (재위 27년, 642년 ~ 668년): 고구려의 마지막 왕입니다. 연개소문에 의해 추대되었으며, 재위 기간 동안 연개소문이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645년 안시성 전투에서 당 태종의 대군을 격퇴하는 등 영웅적인 저항을 보여주었으나, 연개소문 사후 지도부의 분열과 거듭되는 당나라 및 신라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27년 재위 중인 668년에 결국 고구려는 멸망하였습니다.

고구려 모든 역대왕들의 계보와 업적을 순서대로 살펴보며 그들의 삶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고구려의 왕들은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때로는 위대한 정복자로, 때로는 현명한 개혁가로, 때로는 비운의 희생자로 각자의 소명을 다했습니다. 전체적인 큰 흐름을 먼저 보고 각 왕들이 시대의 요구에 응하며 국가를 발전시키고 수호해 나가는 과정을 더 세세히 살펴본다면 훨씬 더 큰 감동이 올 거예요.

 

그들의 리더십과 희생이 있었기에 고구려는 한반도 역사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판도를 뒤흔드는 강력한 제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이 남긴 정신과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끈기 있는 도전 정신과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는 고구려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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