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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12

당태종의 굴욕과 안시성전투, 이름없는 성주와 고구려 백성들이 만든 기적 당태종의 굴욕과 안시성 전투, 고구려 백성들이 만든 기적제국 황제의 야망과 안시성의 등장 645년, 당 태종 이세민은 대제국의 황제로서 동북아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려 했습니다. 그는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해 요동성과 백암성을 차례로 무너뜨렸습니다. 겉보기엔 파죽지세였지만, 그 행군의 끝에는 작은 성 하나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로 안시성이었습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따르면 당군은 3개월간 안시성을 포위했지만 함락에 실패했습니다. 고구려 성주는 정사에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지만, 후대 전승에서는 양만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영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의 이름은 기록되었지만, 그를 좌절시킨 성주의 이름은 사라졌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안시성전투는 군사적 사.. 2025. 9. 9.
연개소문 업적과 쿠데타, 고구려의 방패가 되리라 왕을 넘어선 대막리지 연개소문 업적과 쿠데타, 고구려의 방패가 되리라칼날 위에 선 영웅?! 피로 쓰고 불멸로 새긴 고구려의 방패 고구려의 장대한 역사 속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유독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강렬한 파장과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구려의 마지막을 온몸으로 불태운 연개소문입니다. 그의 생애는 한 편의 비극적인 서사시이자, 거친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인간의 투지 그 자체였어요. 지난번 이야기했던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 명분이 된 연개소문 정변은, 사실 연개소문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서막에 불과했답니다. 오늘, 우리는 연개소문의 피 끓는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권력을 움켜쥐고, 무엇을 이루려 했으며,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깊숙이 들여다볼 거예요. 그의 칼날 끝에서.. 2025. 9. 5.
연개소문 정변과 당나라 침공 명분, 고당전쟁 혼란사 그 시작의 명분론 연개소문 정변과 당나라의 침공 명분, 고당전쟁 시작! 고구려 위기를 노린 강대국의 명분 전략 고구려 역사의 말기로 갈수록 연개소문이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보통의 권력자와는 스케일이 다른 결단으로 고구려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죠. 그는 강력한 권력을 쥐기 위해 쿠데타(정변)를 일으켜 그 당시 고구려왕이었던 영류왕을 죽이고, 자신을 따르지 않던 수많은 귀족과 대신들을 제거하며 고구려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순식간에 피바람이 불었고, 고구려는 거대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당나라는 이 사건을 빌미로 고구려 침공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고구려 내부의 일인데, 왜 당나라가 난리 법석 떨면서 쳐들어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연개소문의 정변이 어떻게 당나라가 고구려를.. 2025. 9. 3.
보장왕, 역사의 끝에서 고구려를 다시 꿈꾼 마지막왕, 멸망 후에도 꺼지지 않던 재건의 불꽃 고구려 보장왕 역사의 끝자락에서 나라를 놓지 않았던 비운의 마지막왕 고구려의 장구한 역사 속에는 수많은 영웅왕들의 이름이 빛나지만, 그 마지막을 장식한 왕의 이름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게 들립니다. 바로 고구려 제28대이자 최후의 왕, 보장왕(寶藏王)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642년에 왕위에 올라 고구려가 멸망하는 668년까지, 무려 27년간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치세는 안팎으로 휘몰아치는 격랑 속에서 고구려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던, 비극적인 시기였죠. 많은 이들이 보장왕을 '연개소문의 허수아비 왕'이나 '고구려 멸망의 증인'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강력한 권력을 쥔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그늘 아래서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는 아무것도 하.. 2025. 8. 17.
영양왕 업적, 고구려의 자존심을 지켜낸 강철 방패 고구려 영양왕수나라 침공 막아내고, 문화 꽃피운 '시대의 수호자' 고구려 역사 속에는 정말 많은 영웅들이 빛나는 업적을 남겼죠. 하지만 모든 왕의 활약이 거대한 정복 전쟁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에요. 오늘 우리가 만나볼 고구려 제26대 왕, 영양왕(嬰陽王)은 특히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나라를 굳건히 지키고, 문화적인 내실까지 꽉 채운 중요한 분이랍니다. 영양왕은 590년에 왕위에 올라 618년까지 약 28년간 고구려를 다스렸어요. 그의 재위 기간은 당시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가 요동치던 격변기 그 자체였죠. 특히 중국 대륙에 수(隋)나라라는 어마어마한 통일 제국이 등장하면서, 고구려는 정말 거대한 외부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어요.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영양왕은 고구려의 독립적인 위상을 굳건히 지켜냈을 .. 2025. 8. 17.
평원왕, 평강공주 아빠라는 이름에 가려진 평강상호왕의 업적 평강공주 아빠 평원왕 평강상호왕, 위기 속에서 나라를 다진 진정한 숨은 명군 고구려 역사 속에는 광개토대왕, 장수왕처럼 드라마틱한 업적을 남긴 스타 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서 묵묵히, 그러나 중요하게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위기를 넘긴 숨은 영웅들도 있었죠. 오늘 함께 만나볼 고구려 제25대 왕 평원왕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평강공주 아빠', 혹은 '바보 온달의 장인어른'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그 어떤 왕보다도 고구려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방면으로 대응했던 진정한 숨은 명군이었답니다. 평강공주(平岡公主)라는 이름도 평원왕의 딸이라서 그렇게 불린 것입니다. '평강'이라는 이름이 고유한 이름이거나 봉호(封號)가 아니라, 아버지가 '평원왕'이면서 '평강상.. 2025. 8. 15.
문자명왕 고구려 대제국 완성의 영웅, 장수왕 그늘에 가려진 손자 고구려 문자명왕장수왕의 그늘에 가려진 영웅, 제국 완성의 숨은 공신! 고구려의 역사를 논할 때, 우리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역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일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이 넓은 영토를 정복하고 고구려의 기상을 드높였다면, 그의 아들 장수왕은 무려 79년에 걸친 긴 재위 기간 동안 평양 천도와 백제 한성 함락 등 과감한 남진 정책을 통해 고구려를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패자로 만들었죠. 두 왕의 업적은 워낙 거대해서, 그 뒤를 이은 왕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수왕의 위대한 치세 이후에도 고구려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바로 장수왕의 손자이자 고구려 제21대 왕인 문자명왕(文咨明王) 덕분입니다. 문자명왕은 이름 그대로 '밝고 총명한' 리더십으로 고.. 2025. 8. 14.
고국양왕 전성기를 위한 준비, 흔들림 없는 다리 역할의 왕 고구려 고국양왕전성기를 위한 준비, 흔들림 없는 다리 역할의 왕 고구려의 역사 속에는 강력한 정복 전쟁으로 이름을 빛낸 왕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웅들 사이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며, 다음 시대의 위대한 발판을 마련한 왕들도 있습니다. 오늘 함께 만나볼 고구려 제18대 왕인 고국양왕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384년부터 391년까지, 약 8년으로 짧은 편입니다. 고국양왕은 광개토대왕이라는 위대한 정복군주의 아버지이기도 한데요. 그의 아버지고국원왕의 비극과 소수림왕의 개혁 이후, 고국양왕은 혼란 속에서 국력을 지키고, 다가올 광개토대왕 시대의 위대한 정복 사업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냈습니다. 그럼 고국양왕이 어떻게 고구려의 미래를 다졌는지, 그의 발자취를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실까요? .. 2025. 8. 13.
고구려 미천왕, 한반도에서 중국 세력을 몰아낸 '소금장수 출신' 영웅 고구려 미천왕 한반도에서 중국 세력을 몰아낸 '소금장수 출신' 영웅! 고구려 역사 속에는 위대한 정복 군주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고구려의 운명을 바꾼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구려 제15대 왕, 미천왕입니다. 미천왕은 묘호 그대로 ‘아름다운 시냇물’처럼 흐르는 인생을 살았을까요? 단순히 왕자 신분에서 즉위한 것이 아니라, 온갖 고난을 겪고 바닥부터 치고 올라와 왕위에 오른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인데요 그가 이룬 업적은 그야말로 강물처럼 강력하게 고구려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습니다. 과연 미천왕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요?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소금장수에서 왕으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미천왕의 본명은 을불 또는 을불리입니다. .. 2025. 8. 12.
고구려 건국 초기 성장 비결과 역사적 의의, 작은 부족국가에서 대제국으로 고구려 건국 초기 성장 비결 작은 부족국가가 대제국으로 발돋움한 역사 고구려 하면 광활한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대제국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실 겁니다. 특히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의 위용은 한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지요. 하지만 이 위대한 고구려도 처음부터 강력한 왕국은 아니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이 작은 부족 국가가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고구려 건국 초기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고, 작은 부족이 대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핵심 성장 비결과 그 역사적 의의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고구려의 '킹덤 빌딩' 스토리가 여러분의 역사적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드릴 것입니다.고구려 건국 초기부족 연맹체의 형성 과정과 시대적 배경 .. 2025. 8. 8.
고대국가 부여를 알면 고구려가 보인다, 한민족의 숨겨진 연결고리 고대국가 부여와 고구려 - 하나의 뿌리, 두 개의 나라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종종 잊고 지나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 나라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죠.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와 강력한 군사력, 문화유산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자주 그 기원이 되는 나라, '부여'에 대해 가볍게 넘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부여 왕족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미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 관계'를 넘습니다. 오늘은 고구려와 부여의 깊고도 유서 깊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1. 고구려는 어디에서 왔을까? 부여에서 시작된 이야기고구려의 시조 주몽, 본명 동명성왕은 부여에서 태어났습니다.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에는 주몽이 하늘의 신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딸 .. 2025. 8. 4.
고구려 건국 주몽 신화 완전정복, 천년을 이어온 동명성왕 이야기 알에서 깨어난 아이, 신이 보낸 존재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신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알에서 부화한 존재였어요. 이 알은 평범한 알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해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고 하죠. 결국 유화는 그 알을 갈대밭에 숨겼고, 거기서 깨어난 아이가 바로 주몽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왕의 권위는 하늘에서 온다는 천명사상이 중요했는데, 주몽은 그걸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었죠. 이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 왕권이 자주 써먹던 ‘신의 혈통’ 마케팅이었습니다. 주몽의 태생 자체가 왕권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출발이자 왕이 세상을 다스릴 천명(天命)을 타고났다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주몽은 알에서 태어남..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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