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하나지만, 나라는 모두가 만들었다.
요즘 영화들 보면 주인공이 하나만 등장하지 않죠. 히어로 영화 한 편을 보면 리더, 조력자, 반대자, 예기치 않은 인물이 모두 등장해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역사를 보는 눈도 그럴 수 있다면 어떨까요?
백제의 건국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온조 한 사람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그 이면엔 수많은 선택과 실천이 어우러진 풍부한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마치 현대의 스타트업이 대표 혼자만의 성과가 아닌 것처럼, 백제의 시작 역시 다양한 인물들의 협업과 경쟁, 실패와 통합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볼 때입니다.
[Fun 한국사/고구려] - 소서노처럼 리드하라, 나라를 세운 여성 리더의 진짜 힘은 무엇이었을까?
소서노처럼 리드하라, 나라를 세운 여성 리더의 진짜 힘은 무엇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권력의 중심, 소서노역사 속에서 소서노는 때때로 ‘주몽의 부인’, ‘온조와 비류의 어머니’ 정도로만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실제 행보를 따라가 보면, 고대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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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
왕이 될 수 없어 왕국을 만든 남자
고구려에서 왕이 되지 못한 온조는 새로운 땅에서 스스로 나라를 세웁니다.
소서노, 비류를 포함한 여러명의 신하와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백제를 건국합니다. 온조의 강점은 혈통보다 전략이었고, 계승보다 창조였습니다.
온조의 백제는 이상이 아니라 실행으로 시작된 나라였습니다. 그의 결단은 온조를 고구려의 왕자가 아니라 스스로 왕국을 만든 냉철한 창업자로 역사에 기록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비류
온조가 이긴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졌던 거야~
온조의 형 비류는 미추홀, 지금의 인천 근방에 자리를 잡지만, 환경의 한계로 결국 실패합니다. 바닷물이 짜고 땅이 질어 백성들이 이탈하고, 그의 공동체는 해체됩니다.
비류는 나라를 건국하는데 실패한 인물이지만 형제가 각자의 길을 갔기에 백제는 보다 선명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실패한 개국자였지만 역사의 중요한 균형추였습니다.
해루 장군
온조의 비전을 군사력으로 실현한 실무형 리더
백제가 성장하고 세력을 넓혀갈 수 있었던 건 단지 왕의 명령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명령을 현실로 만든 무장이 있었습니다.
바로 장군 해루입니다.
온조가 '비전'을 세웠다면, 해루는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든 인물입니다.
해루는 백제의 초창기 전쟁을 주도하며 주변 마한 소국들을 병합해 나갔습니다. 특히 마한의 맹주였던 목지국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며 온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해루는 기록은 짧지만, 백제라는 이름 뒤에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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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귀족
패자의 후손이 택한 충성 "왕국은 잃었지만, 미래를 선택했다."
온조의 백제가 성장하면서 마한의 소국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전쟁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패배한 마한 귀족들 중 일부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온조에게 협력하고 백제의 통치 체제에 편입됩니다.
한때 자기가 다스리던 땅을, 이제는 새 나라에 맡기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하는 마한 귀족들. 슬프지만,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히어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지방 행정조직을 이루거나 군사력을 보조하며 새로운 질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합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온조는 지배자가 아니라 단순한 침략자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마한 귀족들의 존재는 백제가 유연한 통합과 정치적 절충을 통해 강력한 국가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 원동력입니다.
익명의 연합회의체
왕은 한 명이지만, 나라는 모두가 만들었다.
초기 백제는 왕의 절대 권력보다는 귀족 연맹체의 형태를 지닌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온조가 단독으로 나라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력과 논의하며 공동으로 백제를 설계했음을 의미합니다.
각기 다른 지역 출신의 지도자들은 군사, 농업, 재정, 외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가졌고, 이 협의체는 백제가 빠르게 국가 체계를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역사에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이들은 초기 백제의 정책과 방향을 함께 결정한 진정한 공동 창업자들이었습니다.
왕은 하나지만, 국가는 여럿이 만들었다는 고대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종종 범하는 오류는 '누가 왕이었는가'에만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어떤 공동체도 단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백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온조가 중심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 나라를 움직이고 지탱한 건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결정과 행동이었습니다.
형의 실패를 딛고 새 길을 연 온조, 실패했지만 비교를 가능케 하여 백제로 발전시키는 중심추가 되었던 비류, 전장을 헤치며 땅을 넓힌 해루, 패배를 생존으로 전환한 마한 귀족, 그리고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연합 회의체의 인물들.
이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백제를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화로 역사를 정리하면 이해는 쉬워지지만, 진실은 왜곡되기 쉽습니다.
역사란
누구의 이야기인가?
역사는 늘 공동의 선택, 다양한 입장, 다층적인 맥락으로 구성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든, 조직이든, 정치든, 겉으로 드러난 리더 한 명만 주목한다면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설계자들, 말없이 움직인 사람들, 실패한 시도마저도 기록하는 태도입니다.
역사에 대한 상상력은 곧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백제의 건국을 다시 바라보는 건 과거에 대한 공부를 넘어서 지금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기억하고 어떤 구조를 지향해야 할지를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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